물오른 5월의 햇살 아래, 어머니 손을 잡고 다녀온 벌교 전통시장은 봄의 정취와 사람 냄새로 가득한 하루였다.
기차역을 나와 한걸음씩 걷다 보면 시장 입구에서부터 풍겨오는 짭조름한 바닷내음이 먼저 우리를 맞아준다.
그 향기 속엔 바로 벌교의 자랑, 꼬막이 담겨 있다.
벌교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. ‘꼬막’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자연스레 따라붙는 이름.
어린 시절, 엄마가 찜기에 찐 꼬막을 손끝으로 정성스레 까 주시던 기억이 떠오른다.
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익숙한 눈빛으로 좌판들을 하나씩 살펴보셨다.
벌교 토박이 상인들은 “이건 오늘 아침에 잡힌 거여~” 하며 친근한 말투로 꼬막을 권해주신다.
그 말 한마디에 엄마의 발걸음이 멈췄고, 우리는 반근씩 꼬막을 사서 검은 비닐봉지에 담았다.
손에 들린 꼬막 봉지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, 햇살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.
시장 한가운데로 들어갈수록 사람들의 발걸음이 더 분주해진다.
꼬막만 있는 게 아니다. 갓 잡아올린 활어회, 손맛이 느껴지는 젓갈, 향긋한 봄나물들이 줄지어 있고, 그 틈에서 전라도 특유의 넉넉한 인심이 오간다.
“이거 한 줌 더 얹어줄게요.”라는 말에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건네는 엄마의 모습이 어쩐지 더 작아 보였다.
예전엔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시장을 이끌었지만, 오늘은 내가 엄마 손을 꼭 붙잡고 걸었다.
시장 뒤편 작은 국밥집에 들어가 꼬막비빔밥을 시켰다.
한 숟갈 뜨는 순간, 입안 가득 퍼지는 바다 내음에 눈을 감게 된다.
꼬막은 고소하면서도 쫄깃하고, 양념은 자극적이지 않아 밥과 잘 어우러졌다.
엄마는 “이 맛이지, 벌교 꼬막은 그냥 다른 데랑 달라.” 하며 흐뭇하게 웃으셨다.
그 웃음에선 시장과 함께 늙어가는 삶의 무게와, 그래도 여전히 살아있는 입맛의 고마움이 스며 있었다.
식사 후 시장을 나와 다시 기차역으로 걷는 길.
벌교의 들판은 어느덧 푸릇푸릇했고, 논 사이로 바람이 스쳤다.
엄마는 손등으로 땀을 닦으며 “오늘 잘 왔다, 고맙다”는 말을 건네셨다.
나는 고개를 끄덕이며, 이 평범한 하루가 오래 기억에 남기를 바랐다.
벌교 전통시장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었다. 오랜 세월을 살아낸 어머니와 나, 두 세대가 함께 숨쉬는 삶의 현장이었다.
바다에서 온 꼬막의 향처럼, 그 하루는 우리 사이의 빈틈을 따스하게 채워주는 봄날의 기억이 되었다.